본성 회복, 온전성 회복이 자기다운 삶의 시작이다
SNS가 범람하고 상업주의 광고가 득세하는 요즘의 세상에서 역설적인 화두는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SNS를 통한 그 넘쳐나는 자기자랑과 광고의 물결이 너무 거세고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기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자기의 본성이 진정한 자기이니, 본성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자기로 사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자기로 사는 것이 자기의 온전성(integrity)의 상태를 회복하는 삶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내면의 자기 본성이 외부로 드러날 때 자기 삶이 조화를 이루고, 그때 비로소 심신이 통합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나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호모사피엔스 인간으로서의 나의 본성 말이다.
고전적인 거장들, 가령, 맹자, 지눌대사,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하, 알도스 헉슬리, 칼 융, 알프레드 아들러 등 이런 인물들의 모두가 공통으로 강조한 것은 ‘본성의 회복’이다.
본성회복이란?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의 생존과 번식의 논리로 사회화된, 생존전략, 그 생존을 위한 신념, 그것이 자기의 세상살이의 신념인데,
본성이란 이런 사회화된 성격에서 벗어나서, 인간적인 본래의 DNA, 즉 호모사피엔스의 본성을 회복하여 본래의 자기로 돌아갈 때, 그때 인간은 오히려 편안해지고 평화로워진다.
온전한 나가 회복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건강해지고, 일과 삶이 다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것이 곧 온전한 나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1. 사회화된 신념이 만든 ‘가짜 나’
인간은 태어날 때 너무나 무력한 존재로 태어난다. 누워서 응애 응애~~ 하고 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말도 못하고, 일어나 앉을 수도 없고, 혼자서 먹을 수도 없고 서서 걸을 수는 더욱이 없다. 1년이 지나야 겨우 걸음마를 띨 수 있다. 그렇게 철저히 의존적인 상태로 거의 1년을 지나서야 겨우 일어나서 걸을 수 있게 되고 몇마디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양육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에게 철저히 의존하게 되는 기간 동안 어머니 아버지, 또는 형이나 누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에게서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그들의 요구나 규칙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사회화(socialization)의 과정이다. 사회화 과정은 부모의 기대, 사회의 기준에 길들여지는 과정이다. 특히 아동기 어린 나이에 경험한 만큼의 일천한 경험에 기반하여 주관적인 생존전략을 생각해 낸다.
"아~ 이렇게 하니 엄마 아빠가 나를 이쁘다고 하는 구나. 이렇게 살아야지!" 이것이 자신의 생존전략이 되고 이것이 성격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화된 방식대로 자신의 성격 패턴 행동패턴을 강화시킨다. 그래서 각자 다양한 생존전략과 성격의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답지 않은 삶’을 살아가며 점점 인간적 본성으로부터 멀어진다.
특히 성인이 되어서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더욱 낯선 조직에서 낯선사람들과 낯선 일을 하면서 동화되고 상호작용해야 한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쌓이면 젊은 몸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때 몸은 신호를 보낸다. 이유 없는 피로가 쌓이고,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이 신호는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자신의 본성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경고이다.
좋은 직장으로 알려진 특정 업종에서 일을 하기 위하여 성적순으로 대학에 진학하여, 그 계통에서 직장을 얻어서 살고 있는 오늘날 많은 청장년들이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몸은 버티고 있지만 마음은 더 이상 이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호소한다. 그 이유는 단순한 번아웃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과 맞지 않는 일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버드 사회학자이자 전문코치인 마사 벡(Martha Beck)은 『어두운 숲길을 단테와 함께 걸었다』(The Way of Integrity)에서 “우리가 사회화된 신념에 따라 살 때 몸은 병들고 마음은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자신의 흥미 적성 본성과 맞지 않은 일에서 편안할 리가 없다.
타인의 기대, 조직의 요구, 사회의 규범 속에서 ‘가짜 나(False Self)’로 살면, 몸과 마음은 반드시 저항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휴식이 아니라 본성으로의 회귀, 즉 “Integrity(온전성)”의 회복이다. 마사 벡은 또 말한다. “몸의 고통은 영혼이 보내는 신호이다.” 즉, 본성에서 멀어진 삶을 멈추고 ‘진짜 나’로 돌아갈 때, 몸과 마음이 모두 회복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회복하는가?
2. 맹자: 4단의 성선설
본성을 회복하라는 메시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관되다. 동양에서 본성에 관한 명료한 인식을 한 사람이 맹자다. 그는 공자의 인(仁) 사상을 계승하면서도,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낙관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라는 네 가지 도덕적 감정의 실마리, 즉 사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맹자는 사단이 단순히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도덕적 덕목으로 발전할 수 있는 '씨앗' 또는 '실마리'이며, 이를 잘 보살피고 확충(擴充)해나가면 누구나 도덕적 품성을 완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맹자는 이 사단이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내재된 도덕적 능력이라고 보았다. 그는 사람이 팔다리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처럼, 마음속에도 이 사단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이 본성이 양지 양능을 본래적으로 타고 난다고 보는 관점이며,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성선설의 근거라고 인식되고 있다.
맹자는 인간의 악행은 본성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이나 본성을 제대로 가꾸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선함을 강조했다.
3. 지눌대사: 내 마음이 곧 부처다
고려시대의 고승 지눌(知訥) 스님은 인간의 본성을 맹자보다 더욱 명료하게 주장한다. 그의 저서『수심결(修心訣)』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바로 ‘참부처’인줄 알지 못한다.
–今之人不識自心是眞佛
자신의 ‘본성’이 ‘참 진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不識自性是眞法
부처를 찾고자 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관조하지 않는다.
–欲求佛而不觀己心
자기마음의 본체가 ‘부처자리’인데 그것을 모르고, 자꾸 밖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 (출처: 보조국사 지눌대사(윤홍식번역 해설), <수심결강의>, p. 53, 제2장 두 번째 이야기)
내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내 마음이라는 말이다. 깨달음이란,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본래의 부처를 알아차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지눌의 이 통찰은 오늘날의 ‘본성회복 코칭’과 정확히 닮아 있다. 우리의 문제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온전하지만, 사회화된 신념이 그 본성을 덮고 있을 뿐이다.
4. 포이에르바하: 인간의 신성을 투사하다
19세기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하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하늘이라는 스크린에 투사하여 “하늘의 신(神)”이라는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믿고 의지한다고 말했다. 포이에르바하의 핵심 주장은 신이 객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류 자신의 이상화된 특성과 본질적인 속성들을 하늘에 투사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투사의 비판적 결과는 종교적 소외, 즉 자기 소외로 나타난다고 본다.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이 책은 당시 지배적이던 종교적, 철학적 관념론에 도전하며 인간 중심 철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기독교의 본질>에서 포이어바흐는신에게 전통적으로 귀속되던 사랑, 이성, 의지 등의 속성들이 사실은 인간 본연의 완전함이자 능력이라고 면밀하게 논증한다. 그는 인류가 자신의 유한성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이러한 내재적 특성들을 외부의 신성한 존재에게 투사하여, 자신들의 최고 이상을 구현하는 신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정은 "신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로 이어지며, 신을 이해하는 것이 곧 인간 본질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오늘날의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평가와 기준을 신처럼 떠받들며 스스로를 억압한다. 하지만 진정한 회복은 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신성을 다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5. 헉슬리와 에살렌 인간잠재력의 회복
인간의 내면의 신성과 무한 잠재력에 대하여 가장 집중적으로, 그리고 평생에 걸쳐서 연구하신 분이 헉슬리이다. 그가 쓴 영원의 철학, 멋진 신세계, 아일랜드 등의 저작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천착과 실험의 결과물이다.
20세기 사상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인간을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라 보았다. 그의 사상은 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전개된 에살렌(Esalen) 인간잠재력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운동은 “인간 내면의 잠재력 회복”을 목표로, 이후 코칭 철학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그의 핵심 개념을 슬로건으로 시작된 에살렌의 정신은 단순하다. “인간은 내면의 무한한 잠재능력과 창조력으로 스스로를 치유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존재이다.” 즉, 코칭이란 누군가를 고치는 기술이 아니라, 본래의 자기 가능성을 회복하게 돕는 과정, 내면의 잠재된 본성을 회복시키는 대화인 것이다. 오늘날 코칭이 태동하게 된 데는 헉슬리의 공적이 크다.
6. 칼 융: 무의식 속의 신성한 자기(Self)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인간의 무의식 구조를 탐구하며, 그 중심에 Self(자기)가 있다고 보았다. 이 Self는 단순한 자아(ego)가 아니라 신성에 가까운 중심, 즉 인간의 본성(Self)이다. 융은 개성화(individuation) 과정을 “무의식 속의 Self가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 여정”으로 설명했다. 자기실현이란 곧 본래의 신성한 자기가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이라고 본다. 이때 인간은 통합적 존재로 성장하며,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우리가 진정한 자기의 본성으로 살아갈 때, 내면의 질서와 외부의 삶이 조화를 이루고, 그때 비로소 심신이 통합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7. 마사 벡의 단테 해석: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
마사 벡은 단테의 『신곡』을 인간의 내면 여정으로 재해석했다. 지옥은 사회화된 ‘가짜 나’로 사는 고통의 세계, 연옥은 자기수련을 통해 진짜 자신으로 돌아가는 치유의 과정, 천국은 본성을 회복한 삶의 상태인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Integrity(온전성)를 회복하는 길은, 지옥에서 천국으로의 길이다.” 즉, 본성에 충실한 삶이 곧 천국의 삶이며,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게 회복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본성을 회복하라는 메시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의 전문코칭에 이르기까지 이어진다.
본성으로 사는 삶이 천국의 삶이 되는 까닭은 본성이 곧 신성이고, 무한한 가능성이자 창조성이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공동체감이기 때문이다. 본성으로 살 때 온전한 삶이 되기 때문이다.
8. 아들러 심리학과 ADLERS 리더십 코칭: 사적논리에서 공동감각으로
이러한 본성 회복의 철학은 아들러 심리학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아들러는 인간이 어린 시절에 부모와 사회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만든 사적논리(private logic)가 성인이 되어서도 행동의 기준이 되고 있다고 보았다. 사적논리는 “사랑받기 위해 만든 어린 시절의 신념체계”인 것이다. 그것은 불완전하고,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가짜 나’를 강화한다.
이에 대한 치유적 대안으로 아들러는 공동감각(common sense), 또는 공동체감(community feeling)으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이 공동감각은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인간 진화의 본능적 산물이다. 인간의 눈동자가 하얀 이유는 타인의 시선을 알아차리기 위함이고, 인간에게 거울뉴런이 있는 것은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도록 설계된 뇌의 하드웨어이기 때문이다. 즉, 공동감각은 생물학적 본성이자 심리적 회복의 열쇠인 것이다.
필자의 『아들러 리더십 코칭』책과 <ADLERS 리더십 코칭> 프로그램은 이 철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코칭의 핵심 프레임웍은 “사적논리를 넘어 공동감각으로 관점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 관점전환을 통해 사람은 ‘더 큰 나’, ‘더 큰 리더’로 성장합니다. 사적논리가 사회화된 생존의 전략이라면, 공동감각은 인간의 신성에 가까운 본성인 것이다.
아들러 심리학에 기반하여 10여 년간의 코칭 현장에서, 공동감각을 회복한 리더들이 더 건강하고, 공감적이며, 창의적인 리더로 변모하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것이 바로 본성이 회복된 존재의 모습인 것이다.
저는 <아들러 리더십 코칭>이라는 책을 쓰고 그 책에 기반하여 <ADLERS 리더십 코칭>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코치들을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코치협회에서 공식교육 프로그램으로 인증받아서 강의를 하고 있고요, 또한 그 코칭 프로그램으로 기업에서 임원과 경영자를 대상으로 코칭을 하고 있다.
그 ADLERS 리더십 코칭의 코칭 프레임웍이 바로 사회화 과정에서 형성한 사적논리를 넘어서, 공동감각으로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다. 마사 벡의 본성 회복과도 유사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즉 유년기, 아동기에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부모 형제 자매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 스스로 만들어 낸 생존전략, 인생관, 세계관이 '사적논리(private logic)'인데, 그것은 철부지 시절에 일천하고, 제한된 경험에 기반하여 만든 신념이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한 신념체계이며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self-defeating) 신념안 것이다.
아들러는 이러한 사적논리가 수반하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치유해서 더 큰 나, 더 큰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공동감각(common sense), 또는 공동체감(community feeling)으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의 ADLERS 리더십 코칭도 바로 이러한 논리적 프레임웍에 기초하고 있다. 즉 공동감각을 회복한 사람이 더 큰 나, 더 큰 리더가 된다는 논리구조이고, 필자가 이 코칭 프레임웍을 10여년간 코칭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확인한 경험에 기반하여 이 글을 쓴다.
9. 본성 회복이 곧 더 큰 나, 온전성 회복의 시작이다
많은 청장년들이 “몸은 버티고 있지만, 마음은 더 이상 그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럴 때 단순한 휴식이나 직장 이동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진짜 돌파구는 두가지다.
첫째는 아동기 때 사회화 과정에서 스스로 정립하여 자기의 인생관이라고 신성하게 생각하는, 자기 생각의 감옥인, 사적논리 또는 개인논리에서 나와서 공동체감의 공동감각으로 관점전환하는 것이다. 그럴 때 더 큰 나, 더 큰 리더가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본성에 맞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리셋하는 것이다. 즉, 자기 본성에 맞는 일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고 오래 지속 가능한 커리어는 ‘흥미 적성 본성에 맞는 일’에서만 가능하다. 자기 본성에 맞는 일을 회복하면, 마음이 평온해지며, 몸이 가벼워지고, 삶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돌아온다. 본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마음공부’가 아니라, 삶의 방향 전체를 재설계하는 커리어 리셋(Career Reset)의 시작이다. 커리어 리셋은 9Way 감정 진단과 커리어넥스트 진단에 기반하여 디브리핑하는 코칭 과정을 거쳐서 실행된다.
이것이 바로 <몸맘 인생코칭>의 핵심 철학이다. “몸이 버티지 못할 때, 방향을 바꿔라”의 진짜 의미이다. 자신의 본성에 맞는 일을 할 때, 일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오히려 생명력을 불러온다. 신나기 때문이다. 본성회복 = 커리어 리셋 = 몸맘의 통합 회복이다. 본성을 회복하여 자기다운 삶을 회복하는 이 과정을 몸맘 인생코칭이 함께 합니다!